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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무분별하게 퍼지는 콘텐츠…미디어 트라우마 대처법

2023년 08월 29일 오전 09:00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SNS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사건 사고 영상이나 사진을 본 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괴로웠던 적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트라우마와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트라우마라는 말이 어느새 일상용어가 돼버린 것 같은데요. 우선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그리고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대해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최근 한 달간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트라우마에 대한 질문이었는데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경험하고 계신 것 같아요. 우선 트라우마는 상처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외부 요인에 의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정신적 상처와 감정적 충격을 받아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이라도 트라우마를 겪을 확률은 50% 이상으로 굉장히 높은 편이고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까지 포함한다면 80%가 넘습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까지 생겨났는데요.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media induced PTSD)는 어떤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노출되기만 해도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러 부정적 증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개념과 증상, 대응법 등을 사전에 숙지하시면 트라우마를 대처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최근엔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트라우마의 양상과 특성이 변화하고 있는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터뷰]
사실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는 예전부터 많이 나타난 증상입니다. 미디어가 대중화된 이후 꾸준히 그 사례가 보고되고 있었고, 진료 현장에서도 트라우마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지 오래됐습니다. 이런 변화에는 동영상 콘텐츠가 주류가 된 것과 스마트폰의 일상화가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콘텐츠들에 대해 심리적으로 많이 취약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국민 정서는 공감 성향이 높아지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에 가까운 미디어 전파 속도와 뛰어난 화질 등은 사고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간접 체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면 몸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좁은 시야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이런 경우 영상의 내용을 나의 경험으로 느낄 확률이 높아집니다. 간접 경험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실제와 같은 충격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거죠.

[앵커]
트라우마는 그에 따른 증상들이 있잖아요.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는 어떤 증상을 보이나요?

[인터뷰]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 역시 다른 트라우마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데요. 대표적인 다섯 가지 증상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올라서 괴로운 감정이 들고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둘째, 늘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거나 작은 일에도 쉽게 놀랍니다.

셋째, 안타까운 마음에 일이나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넷째, 정신적 불안감으로 인해 불면이나 우울한 상태가 지속 됩니다.

다섯째, 신체적 반응으로 두근거림, 목이나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중 2개 이상이면 트라우마와 관련된 반응으로 불편감을 느낀다고 판단할 수 있고요. 3개 이상이면 심한 불편감으로 일상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누구라도 트라우마 반응을 보일 수 있는데요. 이는 비정상적인 환경에 대한 정상적인 우리 몸과 마음의 반응이고, 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한 달 이상 지속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앵커]
최근에는 SNS를 통해서 사건 사고 영상들이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미디어 트라우마를 겪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이런 반응은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네,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죠.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트라우마가 생기고 어떤 사람은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바로 나타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 생길 수도 있어요. 이는 태어날 때부터 기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이 되기도 하고, 선천적으로 불안이 높게 태어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트라우마가 조금 더 쉽게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강한 내성을 가진 사람들도 후천적인 환경적 요인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그 사람의 내면에서 그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가, 스트레스 반응 강도나 형태, 패턴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자율신경계 과 활성 등의 스트레스 반응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미디어를 완전히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보니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영상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에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인터뷰]
원론적으로는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들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도록 왜곡 없이 전파되거나 무분별하게 공유되지 않는다면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를 줄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언론이나 1인 미디어까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이 더 많이 소비된다는 것을 알고,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재생산합니다. 결국, 콘텐츠의 전파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쏟아지는 콘텐츠 사이에서 스스로 마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다섯 가지 정신건강 수칙을 알아보면,

첫째,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는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야 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반복된 영상 시청을 지양해야 합니다. 영상이 전달되면서 자극적인 부분만 확대 및 왜곡될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영상이나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극단적인 기억을 유발할 수 있어 트라우마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영상으로 접한 사고에 과도한 몰입을 지양합니다. 사고와 관련된 지나친 몰두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정서를 더 활성화 시킬 수 있어 조절이 필요합니다.

넷째, 물리적으로 너무 고립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만 지내려고 하는 은둔생활은 스트레스 반응을 더 가중시키고 부정적인 생각에 더 몰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적절한 휴식과 운동으로 몸을 돌봐야 합니다. 운동은 평소에 즐겨 하던 것도 좋지만,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육 운동이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됩니다.

[앵커]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는데, 마지막에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육 운동이 좋다고 하셨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운동을 하면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소개됐지만, 트라우마 증상을 나아지게 하는 데 모든 운동이 좋은 건 아닙니다. 갑자기 심박 수와 호흡수가 급증하는 유산소 운동은 오히려 외상에 대한 기억을 일으킬 수 있어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천천히, 집중해서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 신체의 변화를 느끼고 자신감이 생겨서 트라우마 증상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심리치료전문가 바빗 로스차일드는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근육을 키우는 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로스차일드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불안하고 화를 잘 내는 젊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이 불편해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서 허벅지 근육이 튼튼해지고 집중력이 좋아졌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로스차일드는 실제로 근육 강화 요법을 치료과정에도 사용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를 받던 30대 여성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자 척추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시켰는데요.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여성은 반복해서 연습했고 실제로 척추 상태가 좋아지자 이 여성의 증세도 좋아졌습니다. 로스차일드는 이 여성의 척추 근육을 평생 겪을 어려움을 이겨낼 '버팀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정말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말이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회복에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시죠.

[인터뷰]
트라우마에 있어서 핵심적인 세 가지 요소는 사건과 경험, 영향의 복합적인 측면이 잘 고려되어야 합니다.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경우, 개인의 노력만큼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족이나 공동체, 지지 집단과 연결성이 높을수록 트라우마를 좀 더 잘 극복하고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공동체와 연결성이 낮을수록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한 부정적 영향에서 회복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모든 사람의 과정은 다릅니다. 스스로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회복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앵커]
요즘 정보의 바다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무분별한 영상 시청으로 미디어 트라우마를 겪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이런 영상 시청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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