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우리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지켜야 하는 중요한 가치들은 존재하죠. 오늘은 우리가 함께 유지하고 키워나가야 하는 중요한 가치 가운데 공동체성, 즉 '함께'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렸을 때 배웠지만 현대에 살면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공동체를 오늘 주제로 삼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터뷰]
오늘은 2가지 키워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웃 사촌'과 '각자도생'. 낯설지 않은 단어들이시리라 생각이 드는데요. 다만 들어보신 시점이 다르다 싶으실 겁니다. 먼저 '이웃 사촌'은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이야기와 함께 들어보셨죠? 그러나 현실에서 이 말이 얼마나 와 닿으시나요? ’나 때는(라떼는)...‘을 대변하는 철 지난 단어처럼 느껴지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를 반영하듯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에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19~59세 성인남녀 602명을 대상으로 이웃과의 관계 및 교류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이미 33.7% 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고 답했고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안다고 응답한 57.8%도 피상적 수준일 뿐, '이웃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8.5%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2022년엔 이웃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6.6%로 줄었고 이웃과의 교류의향도 전체적으로 57%에서 50.2%로 줄어들어 '각자도생'이 더욱 익숙한 시대가 되었죠. 이 시점에서 각자도생의 삶이 우리에게 더 좋은 일상, 즉 더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가져다주었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겼고, 그것에 대한 회의적인 대답이 우리가 잊고 있던 '함께 하는 우리'의 공동체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각자도생'이 지금 우리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저는 그런 단어가 됐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각자도생'의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인터뷰]
네. 충분히 동의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단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만 통용되었던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이 회자 되었던 시대적인 특성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요. 인터넷 사전인 나무위키에서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선 1997년 외환 위기 시기에 사회적 궁핍과 가속화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점차 서로를 챙겨줄 여력을 잃어가면서 같은 동네, 이웃과 친척에게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영원한 적이나 아군이 없다는 복불복 게임이 유행하면서 그때의 시대상을 '각자도생'이라고 축약하며 사회 전반에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의 전쟁 중에,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각자 살 길을 도모하라'는 내용이 등장하게 됩니다. 최근에도 코로나 19 이후,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악화와 대인관계의 단절 속에 '각자도생'이 시대적 흐름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죠. 즉, 공통적으로 극도로 각박해지고 생존의 위협까지 닥쳐오는 시기에 우리 사회에 '각자도생'이 회자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자도생의 보편화'는 서로를 믿을 수 없고 돌봄이나 배려, 친절, 연대와 같은 함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들도 그저 배부른 소리, 입바른 소리에 불과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 수 있습니다.
[앵커]
각자도생이란 말이 익숙한 만큼 그만큼 지금 우리의 삶이 각박하고 경쟁이 지나친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증거라고 볼 수 있겠죠?
[인터뷰]
어떻게 보면 언제든 휴대전화 터치 몇 번으로 다양한 뉴스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고, TV 채널도 수백 개에 달하는 시대라 각자도생하면서도 외로움이나 고립감, 고독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는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최적화된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역설적으로 이렇게 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오히려 외롭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은 늘어가기만 합니다.
이는 소속감의 부재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심리학자 Maslow는 인간 욕구의 위계를 설명하면서 우리 인간은 생존과 안전만 보장되면 그다음으로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충족되기를 갈망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즉, 함께하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도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세상은 네트워크의 발달로 더 쉽고 빠르게 연결되는 것 같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우리의 소속감을 채워주지는 못하는 거죠.
'고립의 시대'를 쓴 노리나허츠는 '외로움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족과 이웃, 직장과 사회, 정치로부터 홀로 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는 모두 고유한 개체라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일 수 있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정신적으로 메마르고 공격적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앵커]
외로움이 공격성이나 또 다른 부정적인 정서를 파생시킨다는 의미일까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만성적 외로움이 공격성과 두려움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인데요.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2주간 격리된 쥐들에게 두려움과 관련한 Tac2/NkB로 알려진 특정 단백질을 더 많이 생성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연구들이 또 있는데요. 마이클 본드는 자신의 책 '타인의 영향력'에서 미국 교도소 독방에서 격리된 채 지내는 재소자들의 22~45%가 정신질환이나 뇌 손상을 나타냈고 2005년 캘리포니아 교도소 자살의 70%가 독방에서 일어났다고 보고했습니다.
교도소 상황이 아니더라도 2010년 NASA에서 한 실험을 보면, 다양한 국적의 우주비행사 6명을 선발해 520일 동안 고립시키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한 결과, 4명은 외로움이 커지면서 인지기능이 저하되었고 2명은 수명 패턴에 교란이 생겼습니다. 즉, 우리는 고립상태에 있을 때 신체적, 심리적으로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고립된 상태에서 사람 사진을 보여줬을 때와 고립된 상태에서 음식 사진을 보여줬을 때 반응하는 뇌 부위가 같다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욕구, 즉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앵커]
조금 전에 만성적인 외로움이 공격성과 두려움을 유발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외로움을 방치하다 보면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겠네요?
[인터뷰]
네. 최근에 일어난 우리 사회를 들썩인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개인 간의 원한 관계가 아니라 사회를 향한 극단적 강력범죄가 많은데요. 일면식도 없었던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정유정의 경우, 고교졸업 후 5년간 휴대전화에서 타인과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이 없고 친구 이름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신림역 사건의 조선에 대해 주변 지인들이 술과 도박에 탕진하면서 외로움을 탔다는 주변 지인들의 전언은 사회에서 단절되어 고립되었을 때, 소외감이 분노로 변질 되어 얼마나 무서운 공격성을 나타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공동체성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가 소속감이 점차 부재해지면서 어떠한 폐해가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코로나 이후 이런 외로움이 더욱 심화 되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개선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인터뷰]
우리 사회에서는 외로움 역시 개인의 현명한 각자도생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정서적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의 번화가 시급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나약함이나 취약성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9년 은퇴자의 외로움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연간 7조 7천억에 달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영국에서는 이미 지난 2018년 외로움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질병 등을 비용으로 환산했을 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외로움부'를 신설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세종시 공무원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 속에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직원들의 정서를 보살피는 외로움 전담관을 운영하기로 했는데요. 굉장히 다행스러운 소식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여겨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외로움과 고립의 문제를 개인 정서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되고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공존하면서 특히 사회의 전반적인 캠페인과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가족 해체라는 현실 속에 학교에서라도 관계 중심의 생활교육이 중요한 영역으로 들어가 공동체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들은 우선 무엇보다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요. 피하지 않고 외로움을 인정해야 소속감과 사회와 연결망을 갖고 싶다는 욕구를 볼 수 있고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욕구를 인정한다면 충분히 지역사회의 활동가나 사회복지사, 상담전문가 등과 연계해서 외로움을 타계해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앵커]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임지숙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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