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은 / 상담심리학자
[앵커]
연인 관계에서는 마음이 평소보다 관대해지기도 하고, 연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금전적으로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죠. 이런 감정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연인처럼 접근해 금전적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로맨스 스캠'범죄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로맨스 스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최근 로맨스 스캠 관련 보도들을 보고 로맨스 스캠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로맨스 스캠'이란 어떤 것인가요?
[인터뷰]
로맨스 스캠,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되신 분들도 많이 계실 텐데요. 로맨스 스캠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와 신용 사기의 한 종류를 뜻하는 스캠의 합성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연애 관계를 빙자하여 상대방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면서 이것이 마치 새로운 사회 현상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로맨스 스캠 자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범죄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닙니다.
실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데이트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는 여러 국가를 돌며 수많은 여성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힌 사기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이 사기꾼은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상용화된 데이트 어플인 틴더를 기반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여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로맨스 스캠은 일어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상대의 신원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더욱 제한적인 온라인상에서 이러한 피해가 더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코로나 19 사태 때문에 온라인 데이팅 시장이 급성장하게 되면서 로맨스 스캠도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앵커]
'로맨스'라는 단어 때문에 사실 그렇게 심각한 범죄라는 인상은 아니었는데,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심각한 범죄이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피해자들의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 걸까요?
[인터뷰]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데이트'라는 단어 때문에 폭력의 심각성이 희석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로맨스 스캠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맨스'라는 단어 때문에 어딘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피해도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요. 실제로는, 로맨스 스캠의 피해 규모는 다른 사기 피해보다 훨씬 심각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로맨스 스캠 피해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집계한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총 281건, 피해액은 총 92억2,000만 원에 달합니다. 증가세도 가파릅니다.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2020년 3억 2,000만 원에서 지난해 39억6,000만 원으로 늘었습니다.
2022년에 실시 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온라인 데이트 사기로 인한 연간 금전적 피해가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피해자들은 2021년에만 5억 4,7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어 2020년의 3억 5,000만 달러에 비해 손실액이 최대 약 56%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미 금전적 피해 규모만 해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피해가 금전적인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앵커]
그러니깐 돈을 뺏기는 것 이외에 다른 부분에서도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인터뷰]
이게 바로 로맨스 스캠에서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로맨스 스캠의 가해자, 즉 사기꾼은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이득을 손쉽게 취하기 위해서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피해자들이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듭니다. 즉 어떻게 보면 로맨스 스캠도 성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만 다를 뿐, 아동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그루밍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는 아동 청소년 피해자와 마치 연애하는 것 같은 사이를 설정해 두고 조금씩 조금씩 피해자에게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전송하도록 유도하죠. 최근 로맨스 스캠 피해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우리는 연인 사이니까'라고 말하며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전송하도록 한 후, 그걸 빌미로 협박하여 더 크고 지속적인 금전적 갈취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연인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알려주게 되는 개인정보나 개인사, 자신의 취약점 등도 결국 협박의 수단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만 보았을 때는 금전적 손해만 기록되기 쉽고, 실제로 가해자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하여 피해자를 이용하는 것이 맞지만, 그에 이르는 수단이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전방위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사실 '우리 연인 사이니깐 이거 알려줘, 이거 보내' 누가 이걸 보낼까 싶지만 사실 이게 피해자가 느끼는 심리가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심리일까요?
[인터뷰]
바로 그 지점이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와 유사한 부분입니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제가 지난번 방송에서 말씀드렸던 사이비 종교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 편에서, 소위 말하는 '교주'들이 처음부터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로맨스 스캠의 가해자들도,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부터 사기꾼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시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이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백마 탄 왕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죠.
앞서 말씀드렸던 다큐멘터리 영화에 등장하는 사기꾼도, 자신이 다이아몬드 재벌가의 자식이라고 얘기하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합니다. 데이트할 때 아주 고가의 선물을 주고, 고급 식당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켜준다든지, 심지어는 전용기를 타고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합니다. 이런 양상이 이미 다른 이슈를 통해서 익숙하게 들리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꼭 이만큼까지 재력을 과시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전문직이라고 사칭한다거나,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여 배우만큼 잘생긴 외모라고 속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믿도록 하기 위해 먼저 거액의 돈을 쓴다든지, 자신의 말을 입증해 줄 '증인'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 다큐멘터리의 사기꾼은 자신의 경호원들과 수행원들, 친구들, 심지어는 '전처'와 아이 역할까지 고용하여 피해자들을 속였습니다.
[앵커]
처음에는 완벽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돈을 요구한다거나 하면 굉장히 수상해 보일 것 같은데요. 피해자들은 어떻게 가해자의 요구에 순순히 돈을 보내게 된 것일까요?
[인터뷰]
예를 들어 데이팅 어플에서 사람을 만났다고 했을 때, 온라인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경험이 있어도 상대방이 하는 말을 처음부터 완전히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꾸준히 신뢰를 쌓는 기간이 있고, 이때부터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완전히 믿게 됩니다. 사실 이건 금전 사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패턴 중 하나인데요. 지인들을 대상으로 금전적 사기를 치는 경우, 처음에는 소액을 빌린 후에 이자까지 후하게 쳐서 빠르게 갚아주죠. 그다음에 빌리는 금액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지만, 언제나 돈을 바로 갚아주고 이자도 밀리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거액의 돈을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빌리고 그대로 가해자가 잠수를 타 버리면 문제가 터지죠. 로맨스 스캠도 비슷합니다. 어느 날 나의 연인이, 예금과 적금 만기가 일정이 잘 맞지 않아서 급하게 소액의 돈을 융통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한다면? 냉정하게 거절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니면 지금 나의 연인이 갑자기 교통사고가 났는데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런 식으로 가해자들은 긴급 상황을 빙자하여, 자신에게 이미 호의를 갖고 있는 피해자들이 마음 약해지도록 만들어 돈을 갈취하기 시작합니다.
[앵커]
나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나쁜 범죄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로맨스 스캠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사실 모든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라는 말은 크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은 자신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관대해지기 쉽다는 것을 기억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새로 만난 연인이 유독 업무상 출장이 잦다든지, 외국에 살고 있다든지, 그밖에 어떤 핑계로든 나를 잘 만나지 않거나 아예 만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이 실제로는 나에게 보여준 모습들과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취미나 취향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하는 모든 말에 완벽하게 호응한다거나, 마치 잃어버린 영혼의 반쪽처럼 내가 하는 모든 말에 완벽하게 공감하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도 주의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최소 2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비슷한 사람도 어느 정도의 차이점은 있게 마련인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와 너무나 똑같아 보인다면 그것은 나의 착각이 개입한 것이거나 상대방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방이 말하는 자신의 개인정보나 개인사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데다가 나에게 금전적인 거래까지 유도한다면, 반드시 신중하게 잘 살펴보셔야 하겠습니다.
[앵커]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는 걸 기억하면서 '좀 수상한데' 싶으면 신중하게 살펴봐야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학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